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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300m의 바위산까지 솟구쳐 올라오는 지중해를 상상해본 적 있는가? 겨울에도 싱싱한 야자수가 하늘을 찌르는 프랑스 남부의 풍경과 더불어 상상 이상의 광경을 연출해내는 저택이 있다. 프랑스의 해양 요양 도시 칸(Cannes)에서 테울(Theoul)을 향해 끝나지 않을 것처럼 구불거리며 올라가는 국도를 따라 30여 분 정도 차를 몰다 보면 어느 순간 탁 트인 전망에 잠시 호흡이 멈추는 때가 온다. 열대 식물들과 노란 미모사(mimosa)의 봄기운 사이로 붉은 흙과 벽돌로 지은 주택이 드문드문 보이고, 그 사이로 마치 우주의 한 부분을 떼어 옮겨놓은 듯 둥글고 묘한 건물이 하늘과 맞닿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지상의 물체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의심스러운 방울처럼 생긴 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건물을 보고 있노라면 주변의 경관을 향해 이보다 더 훌륭할 수는 없다며 마침표를 찍듯이 절대적인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바위산과 하늘 그리고 바다가 진정으로 일체를 이루는 절경에 자리한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의 휴식처, 팔레 뷸(Palais Bulles, 공기방울 저택)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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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으로 내려와 팔레 뷸의 중심을 바라본 모습. 왼쪽으로 파티 룸이 이어진다. 야자수는 스페인산. |
공기방울(Bulles)이라는 애칭이 정식 칭호가 된 팔레 뷸과 피에르 가르뎅의 인연은 특이하게 찾아왔다. 1980년 초, 시트로엥 자동차 계열 트럭(Camion Berliet) 생산자의 동업자이자 붉은 바위산으로 유명한 테울의 넓은 부지를 소유한 사람이 가르뎅을 만나고자 했다. 그의 이야기인즉, 유산으로 물려받은 부지에 1975년부터 집을 짓기 시작했는데 사업에 위기가 찾아와 완공할 자금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부지의 희소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가르뎅의 공사 지원금을 부탁했다. 레스토랑 막심에 대한 투자와 맞물려 있을 때라 고민을 거듭해야 했지만 가르뎅은 평소 좋아하고 친분이 있던 이탈리아 건축가 앙티 로박(Antti Lovag)에게 프로젝트를 맡긴다는 조건하에 투자를 결심하기에 이른다. 팔레 뷸이 이 시대에 지니게 될 명성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내 자본이 허락했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데 투자한 결과지요.” 피에르 가르뎅의 회상이다. “앙티 로박의 작품은 그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자연 조건과 그 지방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현지 재료들을 이용하는 그의 작품 세계가 좋았고, 특히 내가 집착에 가까운 열정을 쏟는 원형 공간 제작자라는 데 이견이 필요 없었지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투자를 부탁했던 부지 주인은 사업 실패에 대한 충격으로 심장병을 얻어 사망했고 프로젝트는 고스란히 가르뎅의 것으로 남았다.
자금에 대한 걱정은 해소되었지만 팔레 뷸을 몇 년 안에 완성하지는 못했다. 공사를 시작해서 실제로 완공을 맞은 때는 1990년. 자그마치 15년의 세월이 흐르고 난 뒤다. 바위와 잡목들이 무성했으며 해발 300m의 급경사라는 난항들에 부딪히면서도 자연 조건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겠다는 건축가 로박의 도전장은 사실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을 일이다. “첫 공사는 10년이 되기 전에 마쳤습니다. 이 휴양지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가르뎅 씨의 완벽주의가 개축에 재축을 거듭해 나간거지요.” 15년째 팔레 뷸의 관리를 맡고 있다는 리처드의 말이다. “쓰레기 저장고의 출입구마저 그의 이니셜을 따서 P와 C 형상을 갖추기를 원한 분이었으니까요. 보다시피 팔레 뷸 내에서는 정문 입구부터 마지막 층까지 직선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최근까지도 크고 작은 보수 공사를 마칠 때마다 한 곳이라도 직선이 보이면 보다 둥글게 개조하기를 바라세요. 그러다가 공사 후반부에는 외부에서 그의 개인 아파트로 바로 연결되는 문과 통로도 확장하게 되었고요. 완공이 늦춰질 수밖에 없었지요.” 그는 현재 피에르 가르뎅 휴식처의 총관리인으로 아내와 함께 팔레 뷸의 잔디 보호, 야자수와 정원 관리, 수영장 물 조절, 파티 이벤트 협조, 청소 등을 맡아 가까운 칸에서 매일이다시피 출퇴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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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르 가르뎅의 아파트 테라스에서 지중해 정면을 조망한 모습. 잔잔한 지중해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
내부 면적 1,200㎡, 정원과 수영장 그리고 야외극장 등 외부 시설들을 포함하면 8,500㎡에 달하는 이 어마어마한 팔레 뷸은 애칭에서도 확인되듯 건축가 로박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살려 모든 공간이 둥글게 구성되어 있다. 집은 가르뎅의 아파트가 있는 1층과 몇몇 스위트의 낮은 1층들을 제외하고 모두 아래로 내려가는 구조를 이룬다. 이렇게 내려갈 수 있는 층은 지하 5층까지. 지하라지만 언덕에 자리한 지리적인 조건과 모든 스위트가 바다를 바라보는 형태로 지은 덕에 지하 5층도 채광이 문제되는 방은 없다. 작게는 50㎡, 크게는 165㎡인 방울 한 개의 공간이 26개에 달하는 특이한 구조들은 하나의 기다란 복도로 예외 없이 연결된다. “마치 인간의 오장육부를 보는 것 같다고 할까요.” 피에르 가르뎅의 표현이다. “사람의 몸속에 있는 여러 가지 둥근 형태의 기관이 긴 십이지장과 연결되어 있는 그림을 상상하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물론 사람 내장과 팔레 뷸의 모습에는 차이가 있지만 이를테면 꼭 그런 느낌이 든다는 말이지요.”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입구에서부터 각각의 스위트로, 정원으로 또는 다른 방향의 복도로 인도하는 긴 메인 복도는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공간을 이루는 데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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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복도와 리셉션 공간이 만나는 곳에 있는 스위트는 회의실이다. 합성수지로 주문 제작해 설치한 문을 열면 UFO의 내부처럼 둥그렇고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회의실은 팔레 뷸의 외부에서 받은 느낌을 그대로 이어간다. 군데군데 뚫린 둥근 창들, 둥근 탁자와 의자,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설치된 빨간 합성수지 의자 세트, 거기에 피에르 가르뎅 가구 컬렉션의 초창기 작품들인 램프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창문으로는 지중해가 보이고 바로 아래층의 파티 룸 단면도 볼 수 있다. 회의실 옆에는 작은 층계를 따라 연결되는 다른 공간이 있는데 서재나 집무실로 사용 가능하다. 환한 파스텔 톤의 벽 한 쪽에는 프랑수와 로방(Francois Lhauvin)이라는 젊은 아티스트의 벽화가 아늑함을 더한다. “평균 나이 25~26세의 신인 작가 8명을 선별해 방의 벽화를 맡겼습니다. 이미 명성을 얻은 아티스트들을 고를 수도 있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재능 있는 작가들에게 먼저 기회를 주고 싶었으니까요.” 피에르 가르뎅의 말은 그가 재단주로 있는 에스파스 피에르 가르뎅 내 젊은 아티스트 육성회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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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 뷸의 정식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제일 먼저 완성한 공간인 로방 회의실. 둥근 창을 통해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이곳은 레드 컬러 합성수지로 만든 의자까지도 둥글다. 카펫과 테이블, 의자 모두 피에르 가르뎅의 디자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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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방 회의실을 나와 정원으로 이어지는 복도를 따라가는 중간에 브르토 스위트가 나온다. 블루 계열 색상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침실이 마련된 스위트 중 팔레 뷸의 입구와 가장 가까이 자리한다. 관리인 리처드는 태초의 방이라고 달리 부르기도 한다. 아티스트인 브르토의 벽화와 문 입구에 놓인 부화되는 알 조각상 등 생명이 완전한 형태로 세상에 나오기 전의 디자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우주의 어느 곳에 버려진 느낌이기도 하고, 착상할 곳을 향해 여행하는 올챙이의 모습 등이 왠지 신비로운 방입니다.” 60여 년간 생명이 자라는 어머니의 자궁이나 우주의 아늑함을 갈망하며 작품을 디자인해온 가르뎅의 설명이다. 리처드의 말처럼 곡선만이 존재하는 공간의 침대 역시 둥글게 맞춤 제작해 들여놓았다. 침실이 있는 나머지 스위트의 침대는 모두 크기와 형태가 동일하게 통일되어 있다. 하긴 이렇게 둥근 공간 안을 직사각 침대가 차지하고 있었다면 제대로 조화를 이루지 못했으리라. 디자이너의 선택이 수긍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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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명의 젊은 아티스트가 각기 개성을 살린 스위트룸 10개로 이루어진 팔레 뷸. 그중 태초의 신비로운 세계를 주제로 작가 브르토의 스타일을 입힌 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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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토의 방을 나와 계속 아래로 내려가면 팔레 뷸의 중심이라 할 만한 정원이 기다리고 있다. 햇볕이 내리쬐는 8월이나 구름으로 뒤덮인 3월에도 이 높은 언덕까지 전해지는 지중해의 생동감이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드는 곳이다. 햇빛의 변화에 따라 얼굴이 바뀌는 아름다운 복도가 왼쪽이고 정면으로는 팔레 뷸의 덩치에 비해 아담한 잔디 정원과 수영장, 오른쪽으로 100㎡에 달하는 파티 룸이 있다. 큼직한 구멍이 여러 개 뚫린 복도의 외벽은 마치 어느 행성의 분화구와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날씨가 화창할 땐 더없이 좋지만 불어오는 바람이나 날씨 변동에 날려 들어오는 먼지로부터 집을 완벽히 유지하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피에르 가르뎅의 휴식 공간이자 한편으로는 페스티벌이나 각종 이벤트를 위해 임대하기도 하는 공간인 만큼 리처드 씨의 저택 관리는 하루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러나 쌀쌀한 꽃샘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날씨에도 키 큰 야자수가 바다와 저택을 가르는 초록 잔디 정원에 서서 지중해의 경관을 감상하노라면 관리의 괴로움쯤 쉽게 잊을 것만 같다. 여기에서 보는 테울의 절경은 말 그대로 그림이 되고도 남으리라. 팔레 뷸을 등지고 정원에서 오른쪽으로 눈길을 주면 최고 깊이가 3m인 수영장과 뒤쪽으로 파티 룸이 접해 있다. 수영장은 물놀이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가르뎅의 컬렉션이나 외부 리셉션에 무대로 자주 쓰이기도 한다. 실제로 2008년 여름 컬렉션을 피에르 가르뎅은 이 수영장 주변에서 개최했다. 에페 드 미로와(Effet de miroir : 거울 효과)를 도입해 설계한 수영장이지요. 이곳에는 총 3개의 야외 수영장이 있는데 모두 똑같은 시스템으로 디자인해 설치했답니다.” 디자이너의 설명이다. 거울 효과 시스템이란 수영장에 들어가거나 고개를 땅에 가까이 해 정면을 바라보았을 때 수영장과 뒤에 이어지는 풍경에 경계가 없는 것을 말한다. 팔레 뷸의 경우 지중해의 수평선 또는 하늘과 수영장의 물 표면이 맞닿아 있는 듯한 효과를 낸다. “안전 문제 때문에 웬만한 집 시공에는 고려하기 힘든 시스템이에요. 그만큼 시공 가격도 만만치 않고요.” 리처드가 덧붙인다. 아무튼 이 장소는 이 정도로 까다로운 시설의 수영장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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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의 메인 복도 끝에 서면 미니 수영장이 보인다. 미니 수영장은 가르뎅 아파트의 개인 수영장 물이 흘러내려 고인 연못과 같은 곳. 멀리 토굴처럼 뚫린 구멍은 다른 스위트룸으로 연결되는 계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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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돌려 다시 들어간 파티 룸의 중앙 홀 바닥은 이탈리아산 대리석을 사용해 동심원 형태로 마감한 곳이다. 파티를 위해 사용되는 만큼 공간 대부분이 비어 있지만 천장에서 떨어지는 대형 반구와 에멘탈 치즈처럼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고 움푹 들어간 형이상학적 형태들 때문에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르뎅의 창작물들로 장식한 정면 무대에서는 가끔 음악가들의 공연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곳 역시 타원형 창으로 되어 수영장과 바다를 감상하는 데 문제가 없다. 파티 룸 안쪽에는 가르뎅이 휴양차 이곳을 찾을 때 지인들을 초대해 만찬을 여는 공간이 따로 있다. 다이닝 룸에서는 파티 홀 중앙을 통하지 않고 수영장과 정원으로 통하는 출입문이 있어 곧장 바깥 공기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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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의실과 브르토의 방을 거쳐 내려오면 수영장을 접한 파티 룸이 나온다. 중앙의 넙적한 의자는 코끼리 안락의자(Siege elephante), 정면과 측면의 직물 작품, 미래형 TV까지 모두 피에르 가르뎅 컬렉션. 천장의 반구 형태 공간은 회의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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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 중간에 2개의 또 다른 스위트가 있다. 이번에는 바다 속 풍경을 연상하게 만드는 산호빛 방이다. 거친 느낌의 주트 천과 지방산 진흙을 이용해 벽을 마감해서인지 브르토의 방보다 한결 따뜻한 느낌이 든다. 바닥은 대리석으로, 침대 커버는 벽과 같은 산호색으로 처리했다. 마침 살며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스위트의 작은 테라스와 통하는 문을 비추고 있었는데 합성수지 소재의 오렌지색 문 사이로 빛이 통과하는 광경은 꽃이 만개하는 순간의 신비로움과도 닮아 있었다. 이 방의 특징은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정원에서 본 장관을 그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 별이 반짝이는 최고급 호텔의 서비스도 부럽지 않은 매력적인 스위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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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호색과 자연 소재를 이용해 꾸민 스위트. 각 스위트마다 놓인 둥근 침대가 공간의 구조와 잘 매치된다. 바다 느낌이 나는 소품들로 장식해 실내에도 바다의 멋을 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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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뚫린 외벽을 통해 햇살의 축복이 만연한 복도를 지나 왼쪽으로 구부러지면 가르뎅의 개인 아파트에 닿는다. 일반적으로 도심 속에 층으로 나뉘어 분리된 공간을 일컫는 아파트는 실제로 유럽에 귀족이 존재했던 시절, 그들의 대규모 성안에 보다 작고 사적인 분위기를 살린 개인 공간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가르뎅 역시 팔레 뷸에서 혼자만의 공간이 아쉬웠을 법하다. “팔레 뷸이 일반적으로 한 개인이 생활하기에는 불필요하게 큰 공간이니까요. 너무 크면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안락함이 감소하게 마련이지요.” 리처드의 짐작이다. 아파트는 계단을 올라가 다시 복도를 따르고 마지막 계단을 오르는, 너무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미로 같은 과정을 거쳐야 닿는다. 물론 가르뎅은 3차 공사를 통해 따로 낸 문으로 곧장 아파트에 닿는 길로 출입한다. 아파트의 문을 열면 특이하게 주방이 맨 처음 자리하고 있는데 가르뎅이 인정한 요리 솜씨를 가진 리처드의 아내가 요리사라고. “가르뎅 씨는 여행을 다니며 세계에서 이름난 음식을 먹다가도 제 아내가 만드는 푸짐한 음식이 그립다고 칭찬할 때가 많습니다. 제 아내를 자신의 정식 요리사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리처드의 자랑이 이어진다. 밝고 화사한 주방을 지나면 가르뎅 아파트의 모습이 드러난다. 넓은 공간은 4개의 크고 작은 방울 공간들로 다시 나뉘는데, 한쪽은 식사가 가능한 탁자가 있고 그 위에 그가 세계 여행을 하며 수집하거나 선물로 받은 컬렉션들을 진열해두고 있다. 탁자 옆에는 파티오(위쪽이 트인 건물 안의 안뜰로 주로 스페인과 남아메리카에서 흔히 보인다)의 형태를 흉내 낸 미니 정원이 부족했을지 모르는 2%의 햇빛을 선사한다. 아파트는 구조적으로 보아 크게 6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주방과 식사 공간, 아파트 중앙과 응접실, 계단을 올라 도착하는 메자닌(법적인 층고를 유지하면서 층과 층 중간 부분에 라운지 같은 또 다른 공간을 만든 것)과 그보다 더 깊숙이 자리한 가르뎅의 침실이 그것이다. 침실로 오르는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팔레 뷸에서 가장 협소한 공간의 메자닌이 있는데 조용히 독서를 하기에 손색없이 아늑한 곳이다. 그렇지만 바로 아래 응접실과 천장을 공유하는 메자닌의 특성상 막힘이 없고 응접실에서 전망하는 바다 풍경을 함께 누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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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파트 주방을 지나면 크고 작게 분할된 공간들이 하나의 커다란 공간을 이룬다. 사진은 아파트 입구와 통하는 곳. 정면은 소형 파티오가 있는 식탁 공간, 오른쪽으로는 지중해가 펼쳐지는 응접실로 구성되었다.
2 아파트 입구 중심부에서 미니 파티오 방향을 바라보니 공간의 아기자기함이 한눈에 들어온다. 식탁 위 장식품들은 유리공예로 유명한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등을 여행하며 모은 물건이고, 식탁과 의자는 모두 피에르 가르뎅 컬렉션. 오른쪽으로 보이는 야생화 형상 의자는 팔레 뷸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미지 세계, 인류의 탄생구나 다름없는 여성의 자궁을 형상화한 그의 작품이다.
3 가르뎅의 응접실에 앉으면 지중해와 야자수가 눈앞에 가득 찬다. 소파는 내부 분위기에 맞게 맞춤 제작하고 둥근 쿠션들로 포인트를 주었다. 프랑스의 아트 갤러리에서 구입한 협탁과 양옆에 세워둔 램프는 피에르 가르뎅 가구 컬렉션의 초창기 작품들이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난로 역시 동그랗게 맞췄다 하니 가르뎅의 완벽주의가 놀라울 뿐이다.
4 가르뎅 아파트의 메인 욕실에는 지중해 햇살이 가득하다. 세련된 욕실 가구들을 보며 역시 디자이너의 공간임을 확신하게 된다. | 이곳에서 다시 작은 복도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디자이너의 침실과 욕실이 나온다. 젊은 아티스트 제롬 티스랑(Jerome Tisserand)이 부분 벽화를 완성한 공간은 전체적으로 블루마린과 레드 그리고 옐로 3가지 컬러가 조화를 이룬다. 다른 공간과 마찬가지로 둥근 침대가 있고 곳곳에 둔 의자와 램프 등은 모두 가르뎅의 초창기 컬렉션이다. 팔레 뷸에서 가장 위쪽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바다를 바라보는 전망은 남다르다. 리처드의 귀띔에 따르면 가르뎅이 이곳에서 낮잠 자는 걸 아주 즐긴단다. 침실은 유리문으로 출입이 가능한 개인 테라스가 겸비되어 있기도 하다. 응접실로 방향을 바꾸어 다시 내려오면 2가지 경로의 가능성이 있다. 응접실로 난 유리문으로 가르뎅의 개인 수영장과 피크닉을 하고 싶게 만드는 테라스로 나갈 수 있는가 하면, 내려온 나선형 계단을 쉬지 않고 내려가는 방법이 그것이다. 아래로 내려가는 쪽을 택하면 알라딘이 램프를 찾으러 내려간 지니의 동굴에서 금은보화를 발견하는 것처럼 새로운 스위트들을 구경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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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오픈 장식장이 있는 방이 반기는데 채광에 전혀 문제가 없으면서도 다른 방보다 한층 안락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마 바닥과 벽까지 마감재로 쓴 카펫 재질 덕분인지도 모른다. 벽을 따라 곡선으로 짠 장식장이 이 방의 주인공. 가르뎅이 세계를 여행하며 지인들로부터 받은 선물이나 직접 구입한 공예품으로 채워져 있다. 그 방을 나와 다시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노란 가벽이 손짓하는 스위트룸이 있다. 아티스트 제라르 레클로아렉(Gerard Lecloarec)이 채색을 맡은 방으로 파우더 공간이 마련된 정면과 가벽 뒤로 드레싱을 하도록 배려한 곳. 원색을 많이 사용한 벽의 그림들이 왠지 청소년기를 벗어나는 남학생이 쓰기에 어울릴 것 같은 공간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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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피에르 가르뎅의 아파트에서 계단을 내려오다 만나는 첫 번째 스위트. 다른 곳과 달리 벽과 바닥, 가구들 대부분이 카펫 소재로 핑크와 아이비 블루의 조화가 세련미를 더한다. 벽을 따라 둥글게 주문 제작한 장식장에는 60여 년간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수집하거나 선물 받은 장식품들을 진열해두었다.
▲ (오른쪽) 레클로아렉 스위트의 침실. 옐로 컬러로 들뜬 마음을 보색인 블루로 가라앉히고 있다. 우주선이 연상되는 레클로아렉의 그림이 신비로움을 더한다. 정면의 삼각형 가구와 측면의 거울은 피에르 가르뎅 컬렉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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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 뷸의 가장 아래쪽, 즉 정원과 집 입구에서 보면 지하로 오랜 여행에서 집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을 때의 느낌처럼 편안한 기분에 잠기게 되는 스위트가 있다. 저택의 중심과 떨어져 있어서 특별히 배려한 것일까? 10개의 스위트 중(가르뎅의 아파트 제외) 유일하게 주방과 거실이 따로 배치되어 있다. 가르뎅의 아파트 다음으로 큰 방울 공간이기도 하다. 층계 2개를 올라가 둥글게 이동하도록 설정한 이해심 있는 구성이나 따로 배치한 샤워실과 욕실 그리고 구불거리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개인 메자닌이 하나의 독립된 아파트로 사용하기에 손색이 없다. 지루한 주방 일을 할 사람을 위해 싱크대 정면으로 낸 위블로(둥근 창) 역시 가르뎅의 아파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제일 마지막에 완성한 스위트입니다. 일반적으로 집을 지을 때 가장 아래층에서 시작해 위에서 마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팔레 뷸은 맨 위층의 회의실을 먼저 완성하고 점차 아래로 내려오는 형식으로 공사를 마쳤어요.” 지리적인 구조로 보았을 때 공사의 역행은 당연한 일이었을 거라는 리처드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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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마지막 스위트에는 주방과 거실을 따로 마련해 독립적인 공간을 꾸며놓았다.
2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확 뚫린 채광창을 통해 기분 좋은 일광욕을 즐길 수 있다.
3 가르뎅의 개인 응접실에서 침실로 올라가는 층계에서 브랜드의 로고 디자인을 발견할 수 있다. 공간 디자인만으로 이니셜 P와 C를 읽게 하는 재미난 아이디어다. | 이 방을 끝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방법과 마지막 방에서 정원 아래쪽으로 나와 위로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아래에서 방울 형상을 바라보니 육중하기보다는 어렸을 때 후후 불던 비눗방울 놀이를 문득 떠올리게 한다. 캘리포니아 야자수의 키는 더 크게 솟아오르고 지중해는 더 가까이에서 구경꾼을 유혹한다. 정갈하게 손질한 나무들을 따라 오르면 팔레 뷸의 형상도 조금씩 눈높이와 맞추어진다. 크기의 방대함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떠올리다 보면 홀연 이보다 더 자연과의 완벽한 조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다소 기이한 형상과 자연이 이뤄낸 아름다운 일치로 피에르 가르뎅만큼이나 유명한 조형물이 된 팔레 뷸이지만 관리에 들어가는 돈은 막대하다고 한다. 미관 관리를 위해 방문자가 없어도 흐르는 수영장의 물(지하에 설치한 필터가 물을 정화시켜 다시 올려 보낸다)의 전기 사용료나 정식 지붕이 없어 비가 올 때마다 방울 겉면을 타고 내리는 빗물들의 흔적, 높은 지대의 야자수가 찬바람을 맞아 얼지 않도록 신경 쓰는 일 등 언제 어떤 경유로 임대를 요청받을지 모르는 대형 이벤트들을 위해 관리인 리처드는 쉴 새가 없다고. 그렇다 한들 피에르 가르뎅의 팔레 뷸에 대한 애착은 흔들리지 않는다. 수영장 가장자리에 피곤한 날갯짓을 멈추고 잠시 내려앉은 갈매기처럼 패션계의 역사, 위대한 가르뎅이 파리에서 날아와 달콤한 낮잠을 즐길 수 있는 이곳이야말로 지중해가 선사하는 가장 큰 격려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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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 리빙센스 진행·글|오윤경(파리 통신원) 사진|Gleichauf Nicola(인물) & 메종 피에르 가르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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