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타일

우리 옷의 의미와 지향해야 할 방향

정윤맘 2008. 12. 26. 15:37

우리 옷의 의미와 지향해야 할 방향
2008년 다시금 생활한복의 정의를 내려 본다면 생활한복은 <근대화와 서구화로 명맥만 남게 되었던 우리의 한복을 재조명하여 현대 일상 속의 우리 옷 입기를 제안함으로써 전통성을 회복하고자 하고 보다 보편화된 ‘한국적 패션디자인’으로 글로벌화 시대의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고자 하는 옷>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생활한복과 개량한복은 모두 전통한복에서 출발하여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지만 개량한복을 탄생시킨 근대화가 서구의 기능주의와 합리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것에 비해, 생활한복을 탄생시킨 근대화는 세계화 추구 과정에서 오히려 우리 것의 되찾고자 하는 자주적 입장을 지닌, 전통성 회복에 관심을 두었다는데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즉 생활한복의 등장은 한복의 전통성 논란을 넘어서, 한복을 현대인들에게 회자시켜 전통의 의미와 세계화 속의 한국적 패션에 대한 생각을 끌어 올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개량한복의 형태에 있어서도 전통한복과 유사한 형태인 어깨허리 통치마와 긴 저고리라는 단일가치를 추구하고 있으나, 생활한복은 서구화된 기성복에다 전통 복식을 중심으로 접목한 양식으로서 다양한 특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께서는 이러한 생활한복의 범주를 ‘한국적 디자인의 서양복’으로까지 확대할 것을 제안하기도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주목해야 할 점은 생활한복이 단지 추상적으로 한국적 패션을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실례를 매년 매 시즌마다 제시하고 있으며, 실제로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생활한복을 10여 년째 구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새롭게 창조된 한복의 산업화가 이미 정착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생활한복의 명확한 취지를 기업이념으로 삼고 있는 돌실나이를 비롯한 몇몇 브랜드의 경우, 일반 의류기업과 다를 바가 없는 상품기획 과정과 대규모 생산 시스템, 전국적인 프랜차이즈 유통망, 영업 물류 시스템, 제반의 마케팅 활동을 실제로 운용, 그 성과를 축적해오고 있습니다.


생활한복의 내용적 특성

생활한복에 나타나는 내용적 특성은 전통주의적 복고지향성, 민족적 전통성과 저항의식을 표출했던 이념성, 다원적 절충주의 양식의 예술성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겠습니다.


1. 전통주의적 복고 지향성

생활한복에는 전통주의적 복고지향성이 강하게 나타나 초기에는 개량한복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85년도부터는 창조적인 현대화 작업이 시도되었지만 그 역시 삼국시대와 조선시대 및 개화기의 전통적인 한복의 형태적 특징을 모방하는 성향이 강하였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80년대 한국성의 모색이 전통주의적 입장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90년대 중반 이후의 생활한복 역시 복고풍의 영향으로 과거의 스타일을 재해석 재창조하여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습니다. 예복화 경향이 사라지고 일상복이 생활한복의 중심이 되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보다 현대적인 스타일들이 많아졌습니다.


2. 민족적 전통성의 표현

80년대에 있어서 한국적 혹은 전통적이란 말은 주로 전통주의적 입장에 처해 있었습니다. 해방 이후 남과 북이 분단된 상태로 단절되어 있는 상황은 남과 북 각각의 문화를 온전한 민족의 문화로 인정하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온전한 민족문화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통회복에 있어서 관심사였습니다. 특별히 대학가의 저항패션으로 등장했던 ‘민중한복’의 경우 남북이 분단되기 이전의 공통성의 지니고 있는 형태로서, 민족 전체의 전통이라 부를 수 있는 형태의 한복으로서 채택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성의 표현을 생활한복의 형태와 재질, 색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3. 저항성에서 대안성으로

일제시대의 한복은 일본정부에 대한 저항을 나타내는 메시지였습니다. 70년대 반정부운동의 리더들이 즐겨 착용한 두루마기 역시 민족 자주, 반미, 반정부라는 투쟁의 이미지와 민족 지도자의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조선말기 서민 복식의 계승은 80년대 운동권의 학생들을 통해 농민항쟁의 재현을 연상시키는 민중한복으로 부각되며 현재까지 그 이미지가 남아 있기도 합니다. 천연 소재와 천연 염색이 디자인의 핵심이었던 일부 생활한복은 2000년대를 지나며 웰빙(Well-Being), 다운 쉬프트(Down-Shift) 트렌드의 영향과 함께 <자연 친화>라는 대안성을 담은 새로운 생활양식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원색을 피한 내추럴 톤의 컬러와 천연 섬유를 소재로 한 평상복 스타일의 제품은 현재까지 생활한복의 주요한 저변 중 하나입니다.


4. 다양성을 시도한 절충주의

현대문화의 특징은 다원주의, 절충주의로 요약할 수 있으며, 오늘날의 패션은 이질성, 다양성을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문화적 특성으로 전통성과 현대성, 남성성과 여성성, 부유함과 가난함, 아름다움과 추함, 현대 이전과 현대 그리고 현대 이후를 포함하는 것 등 다양한 양면가치들이 동시에 표현되고 있습니다.

 생활한복이 등장한 80년대에 이미 문화전반에 포스트 모던적 성향이 나타났으며 생활한복도 그 영향을 받아 전통성과 현대성의 양면가치를 표현하고, 한국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을 절충하며, 남성성과 여성성의 양면가치를 표현하는 등 절충적 성향과 더불어 다양성이 나타났습니다. 오늘날 생활한복이 지니는 다양성이야 말로 현대 패션으로서의 생활한복이 발전할 수 있는 적극적인 계기를 만들어 준 것으로 생각됩니다.


글로벌 시대의 한국적 패션

2000년대를 넘어서며 다양성이 공존하는 다원화 시대 속에 에스닉 룩(ethnic look)이 대중화되고 있으며, 우리 전통문화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현대화되고 글로벌화 될 것을 끊임없이 요구 받아 왔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에 의해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대의 글로벌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문화와 예술 전반에도 여러 가지 혼합의 문화형태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의 보급과 대중매체의 발전으로 국가 간의 경계와 문화와의 경계도 점점 허물어져 가고 있지요.

이러한 흐름에 의해 나타나고 있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은 서양 중심의 이국취향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는데, 글로벌 시대라 할 수 있는 현재 아시아 대륙의 시장성이 중요한 지표로 떠오르면서 그 찬미의 강도는 더해가고 있습니다. 서양의 문화와 동양의 문화가 서로 어울려져서 같이 공존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 서로 혼합된 퓨전(fusion) 스타일의 양식이 유행의 주류를 이루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다원화 흐름이 강해진 최근에는 이 퓨전 스타일의 범위가 너무나 다양해, 하나의 양식만이 아닌 다양한 시대와 나라의 양식을 동시에 차용하기도 합니다.


또한 시즌마다 새로운 패션을 선보여야 하는 패션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의 원천으로써 이질적인 문화의 새로운 경험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숱한 유명 디자이너들이 세계 여러 나라의 민속의상과 고유의 직물, 자수 등의 디테일한 요소들, 액세서리 등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냅니다. 이를 한마디로 민속풍 또는 에스닉 룩이라 일컬을 수 있습니다.

글로벌 시대에 발맞추어 우리의 한복 역시 현대화, 세계화 작업이 잘 일구어져야 하겠는데 “생활한복”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는 올림픽 이후의 세계화에 대한 열망에다 때마침 IMF에서 비롯된 나라사랑 정서가 바탕이 되어 있어서, 현대화된 ‘우리 옷’을 입는다는 의미가 일시적으로 가능했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당위성에 의한 착용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결론적으로 옷을 입고 안 입고의 문제는 제품의 질과 디자인의 완성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복 현대화와 세계화의 키워드를 말해 본다면, 한복이 독창적인 독자성과 더불어 보편타당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독자성이 결여되면 한국의 문화라고 보기 어렵지만, 보편성이 없으면 세계인은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도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불편함과 거부감이 존재하게 됩니다.


글로벌 시대의 ‘한스타일 브랜드 파워’

글로벌 시대에 발맞추어 우리의 전통 문화 상품 역시 현대화, 세계화 작업의 큰 결실을 필요로 하는 지금, 이 결실을 맺게 할 원동력은 최근 표방하고 있는 ‘한스타일’과도 연관이 있는 브랜드 파워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직까지 한복 산업 네트워크의 힘은 미약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근본적인 원인은 각각의 구성원의 규모가 너무 작다는 점이 큰 듯합니다. 각각의 규모를 보다 키워야 하겠는데 선의의 경쟁을 벌이며 서로의 규모를 키워낼 수 있는 업체들이 보다 많아져 유기적이고 능동적인 네트워크로서 한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옷에 대한 저항 요소를 줄이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화된 한복을 널리 공감할 수 있도록, 제품의 완성도와 브랜드 인지도를 동시에 높이는 작업을 꾸준히 벌여가야 할 것입니다.

 
집필 : 강은진